"실례가 안된다면,
상담 내용을 녹음해도 될까요?"
"왜 그러시죠?"
"죄송해요. 제가 기억을 잘 못해서요"
"기억을 못 하신다고요?"
"네~ 제가 좀 사연이 있어요"
한 달 전, 50대 후반의 여성이 방문했다.
외모 단아했지만,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수심이 가득 찬 게 느껴졌다.
현재 20대의 딸과
마포 아파트에 거주 중이었다.
집을 팔려고 내놓은 상태라고 한다.
매도 후, 자신의 현금 4억과 합치면
14억 정도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집이 팔리면 원룸 건물을 신축해서
거주를 하며 임대 소득을 만들고 싶어 했다.
"제가 급해요.
빨리 좀 진행될 수 있게 해주세요"
"노후가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
충분히 알아보고 진행하시지요"
"저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는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말해주었다.
남편과 15년 전 이혼 후에
주말도 없이 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런데 4년 전부터 기억력이 안 좋아졌다.
본인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요즘 기억을 잘 못하는 거 같아요.
병원에 함께 가요?"
처음에는 딸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느끼기에도 기억력과 언어능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3년 전에 대학병원에 갔다.
그 결과는 충격이었다.
설마 했는데, 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
"하나뿐인 자식도 좋은 직장에 다니고,
이제 좀 편히 살아보려 했는데 ..
내가 알츠하이머 라니..."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후에 말을 이어갔다.
"거주하면서
월세 400만 원 이상은 나오겠죠?"
"네 가능합니다.
더 나오게 만들 수도 있어요"
"네~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기억이 없어져서 엄마 역할을 못해도,
내 딸이 잘 살았으면 해요.
요즘 직장 다니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월세 수입이 힘이 되었으면 해서요"
알츠하이머는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기억력 감퇴, 언어능력 저하, 판단력 저하,
일상생활 수행능력 저하 등..
결국은 자력으로 혼자 생활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그녀는 급했다.
그나마 정신이 남아있을 때,
상황 정리를 해놓고 싶어 했다.
하나뿐인 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을 다 듣고 나서야,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상담 내용을 녹취하려는 이유를..
빨리 원룸 건물을 신축하려는 이유를..
그리고 딸에 대한 큰 사랑을..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었다.
자신의 정신과 영혼이 온전한 남아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녀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는 게 얼마나 두려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딸 걱정을 하는
그녀의 위대함을..'
몇 년 전 끔찍한 뉴스가 생각난다.
30대 후반 남성의 존속 살해 사건이었다.
남편을 일찍 보내고 청소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며 자식을 키웠다.
30대 아들은 술과 게임에 빠져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엄마를
칼로 찌른 사건이었다.
엄마는 피를 흘리면 죽어가면서
아들에게 마지막 말을 했다.
"피가 묻은 옷을 갈아입고 도망가라."
자신을 죽인 아들인데, 죽어가면서도
오직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엄마의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 보았지만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 있었다.
이제 그 문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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