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대학입시에 턱걸이로 간신히 합격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다.
(매일 기도하셨지만 성적이
매우 안 좋아서 큰 기대는 안 하셨다)
예상 밖의 합격에 여기저기 전화해서
아들의 합격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깐이었다.
당장 입학금을 마련해야 걱정이 몰려왔다.
당시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네 식구 생활하기에 빠듯했고,
약간의 빚도 있었다.
당장, 등록금을 마련하는 게 걱정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전후로 2개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돈을 모으지 못했다.
돈이 생기니 옷도 사고 싶고,
놀러도 다니고 싶었다.
부모님의 부담을 줄이자는 효심과
이제 성인이니 좀 즐겨보자는
두 개의 마음이 서로 싸웠다.
결국 효심이 졌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번 돈은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사방팔방
돌아다니면서 돈을 빌렸다.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마음이 불편했다.
중학교 동창 친구를 만났다.
"아르바이트 했는데 등록금 마련은
턱없이 부족해서 걱정이야"
"우리 누나가 졸업식, 입학식 시즌에
양재동에서 꽃을 싸게 사서 파는데
돈을 꽤 벌던데.."
"그래? 얼마나 버는데?"
"학교 입학식, 졸업식 시즌에는
한 달에 100만 원도 넘게 벌어"
"그래? 정말이야~~?"
86년 당시에 대학 등록금은
50만 원 전후였다.
100만 원이면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졸업식 시즌은 이미 지나가고,
대신 입학식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친구 누나를 졸라서
꽃 장사하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내가 기특한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돼지 저금통을 깬 돈으로
약 7만 원의 꽃 장사 자금을 마련했다.
이른 새벽,
양재동 꽃 도매시장에 가서 꽃을 사 왔다.
그날 저녁 밤새도록 포장지로 꽃 포장 연습을 했다.
또 하나 중요한 연습이 있었다.
그건 "꽃 사세요~~"라고 외치는 연습이다.
연습은 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손수레에
꽃과 준비물을 담고
입학식 하는 중학교로 갔다.
도착하니 8시쯤이다.
벌써 꽃을 팔러 온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문에 멀리 떨어진
그리 좋지 않은 자리를 겨우 잡았다.
일단 준비해 온 돗자리를 펼치고
그 위에 꽃을 펼쳐놓았다.
바쁘게 꽃다발을 모양을 갖춰
포장하기 시작했다.
내 옆자리에서는
30대 여성분이 꽃을 팔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내가 포장한 꽃다발 보다
훨씬 세련되고 예쁘게 포장했다.
내가 포장한 것과 너무 크게 비교가 되었다.
"졸업식 꽃입니다.
오늘 새벽에 가져온 싱싱한 꽃이에요"
그녀는 큰 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앞에 가격보다 더 쌉니다.
꽃도 많이 들어있어요. 구경하고 가세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였다.
그녀는 빠르게 팔기 시작했다.
나도 내 쪽으로 시선을 끌고 싶었다.
"(아주 작은 소리로) 꽃 사세요~"
모깃소리 보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마음속에서는 큰소리로 외쳤으나,
내 입을 통해 나온 소리는 속삭임 정도의 크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나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입학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내 옆에서 꽃을 팔던 그녀는
꽃을 모두 팔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5개 정도를 겨우 팔았다.
그나마 팔 수 있었던 것도 학생이
어설프게 꽃을 파는 게 기특해서 사준 분들이다.
꽃다발은 50개 정도 남았다. 큰일이다.
이렇게 끝나면 내 투자금은 몽땅 날아갈 판이다.
"학생. 내가 좀 도와줄까요?"
그녀는 내가 안돼 보였는지 물어왔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괜찮다고 할까? 도와달라고 할까?
체면이고 뭐고 난 살아야 했다.
"아~ 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입학식 시작이라
손님들이 별로 안 올 거예요.
싸게라도 빨리 처분하는 게 좋겠어요"
그녀는 할인된 가격을 매직으로 써서
꽃 장식 앞에 두었다.
"꽃 사세요. 50% 할인합니다.
여기서 가장 싸요. 와서 구경하세요"
그녀는 나를 대신해서 큰소리로 외쳤다.
효과가 있었다.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이 몰려오니 더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30분도 안되어서
50개 정도의 꽃다발을 모두 팔았다.
돈을 정산해보니 8만원이었다.
7만원 투자해서 그녀 덕분에
손해없이 1만원을 벌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꽃 장사 처음이죠?"
"네 처음 해봐요. 생각보다 어렵네요"
"다음부터는 일찍 와서 자리 잡고,
꽃 포장도 연습을 좀 더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큰소리로
사람들에게 외치는 용기가 필요해요"
"네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뒤로 그녀가 알려준 대로 했다.
이전보다 판매 실적이 많이 좋아졌다.
그렇게 1986년 3월.
입학식 시즌에 5군데를 돌며 꽃 장사를 했다.
처음 시작한 자본금은 7만 원이었다.
총 5번의 졸업식 꽃 장사로
50만 원을 만들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
속옷을 사서 집으로 갔다.
좋아하실 부모님의 얼굴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해 내 힘으로 등록금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용돈과 책값은 해결했다.
내 스스로가 참 대견했다.
지금 나는 새로운 사업을 도전 중이다.
두렵지만, 이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1986년도에 꽃을 팔던
20살의 나를 회상한다.
무모했지만 자본금 대비
6배 이상의 돈을 번 경험을..
지금 내가 하는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말렸다.
그러나 나는 계속 도전한다
두려움도 있지만
단희캠퍼스의 성장을 위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살 때 꽃 장사는 무모했지만, 절실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55살 나의 도전은 무모하지는 않다.
나름 많이 준비했다.
단지 지금 나에게 부족한 건,
20살 때 나의 절실함과 용기다.
나는 단희캠퍼스의 성공을 믿는다.
3년 뒤, 내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기고 싶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단희캠퍼스는 3년 만에
년 매출 1,000억의 회사가 되었어요"
단희쌤의 힘이 되고 행복해지는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