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낙엽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난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독특한 취미생활이 있었다.
그건, 낙엽에 시를 적어 보관하는 것이다.
10월부터 낙엽을 주우려고
땅바닥을 보며 한참을 걸어 다녔다.
"오늘은 어떤 낙엽을 주울까?"
하는 설렘으로 나무 아래를 기웃거렸다.
그 과정은 나름 신중했다.
아무 낙엽이나 줍지 않았다.
내 마음에 자석처럼 끌리는 것을 찾았다.
수백, 수천 개의 낙엽들은
나에게 1차 심사를 거친다.
1차 심사를 통해 선별된 낙엽은
대략 50여 개 정도이다.
이제 '2차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펼쳐놓고 모양과 색으로 선별작업을 한다.
2차 심사에서 10여 개의 낙엽이 통과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살아남은 낙엽은 이제
'3차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3차 심사 기준은 시를 쓸 수 있는
크기와 모양과 색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그렇게 최종 심사를 거친 낙엽은 3~4개 정도다.
낙엽은 구불구불하다.
시를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두꺼운 백과사전 사이에 낙엽을 넣고 덥어둔다.
일주일쯤 지나서
책 사이에 있던 낙엽을 꺼낸다.
구불구불했던 낙엽은 반듯하게 펴져있다.
잘 펴진 낙엽에
신중하게 고른 시를 적었다.
시를 적을 때는 손끝은 모든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힘 조절을 조금만 잘못해도
낙엽에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쓰다 보면
힘 조절 실패로 절반은 버려진다.
결국 최종적으로 살아남아
완성된 낙엽은 1~2개 정도다.
처음 주어온 낙엽은 거의
1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는다.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시를 적은 낙엽은 비닐 코팅을 한다.
낙엽 양쪽을 코팅용 비닐을 대고
그 위에 손수건을 덮는다.
그다음 적절히 열이 오른 다리미로
정성스럽게 문지른다.
여린 낙엽은 비닐 코팅으로
안전하게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
반짝이는 코팅 비닐 안의 낙엽은 보기에도 참 예쁘다.
코팅한 낙엽은 나의 보물 박스에 보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물 박스 안에 낙엽이 쌓여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물 박스를 열어본다.
내가 만든 낙엽을 하나씩 살펴본다.
보물 박스에 담겨 지금 내 손에
있기 까지의 과정이 영화처럼 흘러간다.
그 행복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최대한 감정을 담아서 시 낭송을 해본다.
마치 내가 멋진 시인이 된 것 같았다.
매일 돌아가면서 책갈피로 사용했다.
책을 보지는 않았지만
책 사이에 껴있는 책갈피가 참 좋았다.
소중한 낙엽들은 선물로도 사용했다.
친구 생일에 내가 만든 낙엽을 선물했다.
"와우~~ 이거 네가 직접 만든 거니?
멋지다, 고마워"
선물을 받은 친구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보는 게 좋다.
고1, 그 시절 낙엽 하나만으로
행복했던 아름다운 시절이다.
낙엽을 고르면서, 설렘을
고른 낙엽을 심사하면서, 뿌듯함을
책 사이에 넣으면서, 기대를
시를 적으면서, 감동을
코팅을 하면서, 기도를
낭송을 하면서, 행복을
선물을 하면서, 기쁨을
낙엽 하나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 그 감정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늘 점심 식사 후에 산책을 했다.
37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로 돌아갔다.
가로수 길 아래를 걸어 다녔다.
땅바닥을 보며 내 마음에 끌리는 낙엽을 주웠다.
고1 그때의 설렘이 느끼면서
한참을 걸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책상 위에
주워온 낙엽들을 펼쳐놓았다.
기분이 왠지 야릇하다.
이제 난 37년 전 고1 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때와 똑같은 과정을 진행하려 한다.
골라온 낙엽을 심사하고
책 사이에 넣어 반듯하게 펴고
펴진 낙엽에 예쁜 시를 적고
정성스레 비닐 코팅을 하고
낙엽에 적힌 시를 낭송하고
주변 사람에게 선물도 할 예정이다.
낙엽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어 좋다.
낙엽 하나로도 수많은 따뜻한 감정을 찾을 수 있어서 좋다.
10월, 완연한 가을이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이 가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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