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울릴 때
버스에 오르려는데
장바구니가 자꾸 다리에 걸린다.
카드는 어디에 넣었는지 보이지 않고,
뒤에서는 사람들이 기다린다.
손이 마음처럼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진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때 들려오는 한마디.
“천천히 하세요.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습관처럼 건넨 말일 텐데,
그 말을 듣고
울컥하는 날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했던 일 앞에서도
가끔 머뭇거리게 되는 일인지 모른다.
기계 화면이 바뀌고,
안내는 너무 빨리 지나가고,
모르는 것을 묻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뒤에 서 있는 사람의 표정을 살피다가
사려던 것을 그냥 내려놓기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설명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눈빛일 때가 있다.
내가 방해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조금 느려도 여기 있어도 된다는 것.
그 짧은 허락이
하루 종일 굳어 있던 마음을 풀어준다.
생각해보면 우리를 버티게 한 사람 중에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꽤 있다.
길을 한 번 더 설명해준 사람.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 건네준 사람.
내가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준 사람.

옛 동네 가게 앞에는
작은 의자가 놓여 있곤 했다.
물건을 꼭 사지 않아도
잠깐 앉아 숨을 돌릴 수 있는 자리.
그 의자 하나만으로도
골목은 조금 덜 낯설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자리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뒤에서 기다릴 때 한숨을 조금 늦추는 일.
같은 질문을 다시 들었을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일.
거창한 봉사를 해야만
세상이 다정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앞의 한 사람을
덜 초라하게 만드는 일도 있다.
물론 늘 친절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지쳐서
누군가의 배려가 필요한 날이 있다.
그날에는 받으면 된다.
고맙다고 말하고,
그 마음에 잠깐 기대어도 된다.
그리고 조금 여유가 생긴 날,
다른 사람에게 몇 초를 건네면 된다.
“천천히 하세요.”
내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그 한마디를 오래 기억할지 모른다.
오늘 하루가 생각보다 따뜻했다고.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