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이불 한 채를 끝내 버리지 못한 이유
장롱을 정리하다 보면
유난히 오래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있다.
요즘은 덮지도 않는 이불.
색이 바랬고,
한쪽 귀퉁이는 실밥이 풀렸다.
새것은 더 가볍고 따뜻하다.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
이번에는 정리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접으려고 펼친 순간
손이 멈춘다.
서툴게 꿰맨 바느질 자국 하나.
그 작은 자국에서
잊고 있던 사람이 걸어 나온다.

물건은 말을 하지 않는데
어떤 물건 앞에서는
오래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추우니까 발 넣고 자.”
“이건 아직 쓸 만하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것은
천 몇 장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덮어주던 손,
잠든 줄 알고 낮추던 목소리,
아침이면 다시 시작되던 집안의 소리.
그때는 흔해서 몰랐던 것들이
시간이 지난 뒤에야
둘도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낡은 물건을 보고
왜 그런 걸 아직 갖고 있느냐고
쉽게 말하지 않게 된다.
내 눈에는 오래된 물건이어도
그 사람에게는
잠깐 돌아갈 수 있는 방일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평생 보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추억이 많아질수록
오늘 사는 방이 좁아지기도 한다.
정리해야 편안해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때 물건을 보내는 일이
사람까지 잊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진 한 장을 남기거나,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적어두거나,
가족에게 한 번 들려주어도 좋다.
“이 바느질은 할머니가 해주신 거야.”
누군가에게 건넨 짧은 이야기 속에서
그 사람의 손길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간직해도 괜찮고,
보내주어도 괜찮다.
그 마음의 크기를
장롱 속 부피로 재지는 말자.
오늘 오래된 물건 하나 앞에서
손이 멈췄다면,
정리 못 하는 나를 탓하기 전에
잠깐 그리워해도 좋겠다.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덮인 적이 있다는 것.
낡은 이불 한 채가
오늘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쩌면 그것일지 모른다.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