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잊었는데, 나만 아직 그날에 살고 있다
오래전 들었던 말이
설거지하다가 문득 떠오른다.
상대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별 뜻 없이 한 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날의 자리까지 기억한다.
누가 옆에 있었는지,
왜 아무 대답도 못 했는지.
시간은 많이 흘렀는데
마음속에서는 아직 그 장면이 끝나지 않았다.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냥 일어났어야 했는데.
지난 대화를 혼자 고쳐 말하다 보면
오늘의 저녁이 어느새 지나가 있다.

상처가 오래간다고 해서
마음이 좁은 것은 아니다.
가까운 사람의 말일수록
더 깊이 들어오는 법이다.
나를 알아줄 거라고 믿었던 만큼
서운함도 오래 머문다.
그런 마음 앞에
“이제 그만 잊어”라는 말은
너무 성급할 때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회복의 날짜까지 정해줄 수는 없으니까.
다만 가끔은 구별해보고 싶다.
그날의 나를 이해해주는 일과
그날의 나를 계속 혼내는 일을.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왜 그렇게 바보 같았느냐고
다그치는 목소리는
상대의 말보다 오래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그날의 나는
그 순간을 지나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했을 것이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귤 하나를 나누어 먹는 풍경을 생각한다.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기 전,
껍질만 천천히 벗기는 시간.
말보다 손이 먼저 조심스러워지는 시간.
지금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라면
이렇게 시작해볼 수도 있겠다.
“그때 그 말이 내게는 오래 남았어.”
싸움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에 멈춰 있었는지
한 번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는 일이 더 아프거나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은 관계도 있다.
그럴 때는 만나지 않아도 된다.
용서라는 말을 서둘러 꺼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내 오늘까지 모두 내어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따뜻한 밥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
그런 작은 시간들이
과거와 오늘 사이에
조금씩 길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날의 나에게 못 했던 말을
오늘의 내가 건네본다.
많이 서운했겠다.
혼자 오래 들고 있었구나.
이제 네 편에서 네 이야기를 들어줄게.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