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으로 살았는데, 왜 자꾸 서러울까
부탁을 들으면
생각보다 대답이 먼저 나갈 때가 있다.
“그럼요. 제가 할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달력을 본다.
그날은 모처럼 쉬려고 비워둔 날이었다.
미뤄둔 내 일도 있었다.
그런데 벌써 약속했으니
다시 전화하기가 어렵다.
유난을 떠는 사람 같을까 봐,
인정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남의 부탁은 그렇게 내 일정이 되고,
내 사정은 또 한 번 다음으로 넘어간다.

참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역시 당신밖에 없어.”
“당신은 이해해줄 줄 알았어.”
처음에는 그 말이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말이 들리면 어깨가 먼저 무거워진다.
이번에도 내가 참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도와준 일이 싫은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내 사정도 한 번쯤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서운하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나를 계속 서운하게 만들고 있었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지만,
늘 괜찮다고 말한 내 속을
정확히 알아맞히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옛집에는 대문이 있었다.
문이 있다고 해서
인심 없는 집은 아니었다.
반가운 사람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밤이 깊으면 문을 닫기도 했다.
안에 사는 사람도 쉬어야 했으니까.
우리 마음에도
그런 대문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이번에는 제가 어렵겠어요.”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누군가를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말이다.
처음에는 입안에서 서걱거릴 것이다.
말하고 나서 공연히 미안할 수도 있다.
평생 쓰지 않던 말을 꺼내는 일이니
낯선 것이 당연하다.
내 사정을 말한다고 해서
그동안 베푼 마음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래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치기 전에 쉬어가야 한다.
마음에 원망만 남을 때까지 버티지 않아도 된다.
오늘 누군가의 부탁 앞에서
대답이 급히 나오려 한다면,
잠깐만 나에게도 물어보자.
“너는 괜찮니?”
좋은 사람으로 살아온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도
조금 좋은 사람이었으면 한다.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