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었어”라는 대답이 고마워지는 나이
“오늘 별일 없었어?”
“응. 별일 없었어.”
짧은 대답이다.
대화를 이어갈 이야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늘 가던 길을 걸었다.
저녁에는 익숙한 불빛이 켜진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찌개를 데우고,
누군가는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낮췄다.
사진으로 남길 만한 일도,
남에게 자랑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나이부터는
그 짧은 대답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우리는 별일이 생긴 날을
오래 기억한다.
전화 한 통에 일정을 모두 바꾼 날.
기다리던 결과를 듣고
의자에 한참 앉아 있던 날.
그런 날에는
어제의 평범한 저녁이
갑자기 먼 풍경처럼 느껴진다.
아무 걱정 없이
“반찬이 좀 짜네”라고 말하던 시간.
돌아보면
그때는 가진 것이 없는 날이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었고,
내일 먹을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물론 모든 평범한 날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여도
마음속으로 힘겹게 버티는 날이 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한다는 말로
내 서운함과 피곤함을 덮을 필요는 없다.
그저 하루 전체를 실패라고 부르기 전에
괜찮았던 순간 하나쯤
따로 꺼내보자는 것이다.

창문을 열었을 때 들어온 서늘한 공기.
딱 알맞게 익은 밥.
먼저 인사를 건네준 사람의 얼굴.
작아서 지나쳐버린 것들이다.
오늘 밤에는 달력 귀퉁이에
그중 하나를 적어두면 어떨까.
“햇볕이 좋아서 이불을 널었다.”
“오랜만에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따뜻한 국을 한 그릇 먹었다.”
잘 쓸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 보여줄 글도 아니다.
내가 살았던 하루를
내가 한 번 알아봐 주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 그 한 줄을 만나면
대단한 사건보다 먼저
그날의 온도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옛집에도
매일 잔치가 열리지는 않았다.
문 여는 소리가 있었고,
밥 먹으라는 목소리가 있었고,
저녁이 되면 방에 불이 켜졌다.
별일 없던 날들이 모여
마음속 고향이 되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도
훗날 그리워할 작은 장면 하나가
조용히 머물다 가기를 바란다.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