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늙는다는 건, 기다릴 일이 많아지는 걸까
신발을 신는 데 시간이 걸린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휴대폰 시계를 한 번 본다.
“천천히 하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발끝은 벌써 문밖을 향한다.
단추 하나를 잠그는 손,
버스 계단을 오르는 발,
식당 메뉴를 들여다보는 눈.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기다려야 할 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잘 몰랐을 것이다.
예전에는 금방 하던 일을
왜 자꾸 되묻는지,
같은 길에서 왜 걸음을 멈추는지.
걱정이 앞서서 하는 말도
서두르다 보면 날카로워진다.
“아까 말했잖아요.”
“그냥 제가 할게요.”
손을 대신 움직여드리면
일은 빨리 끝난다.
하지만 도와주는 일이 매번
그 사람의 손에서 일을 빼앗는 것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오래 걸려도
스스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테니까.
어린 날을 떠올려보면
우리도 느린 사람이었다.
신발 끈을 묶고,
젓가락을 쥐고,
처음 읽는 글자를 더듬을 때.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주느라 늦어진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다 기억하지 못한 채
우리는 자랐다.

곁에 부모님이 계신 분이라면
오늘은 짧게 물어보아도 좋겠다.
“어디를 도와드리면 편하겠어요?”
답을 들을 때까지
다음 말을 조금 늦춰보자.
이미 부모님을 떠나보낸 분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아픈 기억을 건드릴 수도 있다.
그때 조금 더 기다릴 걸.
그 말을 달리 할 걸.
그렇다고 오래전의 나를
오늘까지 계속 벌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때의 나에게도
처음 겪는 하루였을 것이다.
남아 있는 마음을
지금 곁의 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
계단에서 잠시 멈춘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배우자에게,
예전보다 느려진 나 자신에게도.
함께 걷는다는 건
앞에서 목적지만 알려주는 일보다
옆에서 속도를 맞추는 일에 가깝다.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가는 동안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느린 걸음 곁에
내 걸음 하나를 놓아주는 하루이기를.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