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있는데도, 자꾸 죄를 지은 것 같다
모처럼 할 일이 없는 오후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는데
마음은 편히 앉지를 못한다.
빨래라도 개야 하나.
전화할 곳이 없었나.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몸을 일으킨다.
평생 바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쉬는 일도 낯선 일이다.
해야 할 일을 마친 뒤에 쉬려고 했지만,
해야 할 일은 늘
다음 일을 데리고 왔다.

어린 시절에는
“오늘 뭐 했니?”라는 질문에
“놀았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 말 뒤에 변명이 붙지 않았다.
그런데 어른이 된 뒤에는
즐거웠다는 말만으로
하루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졌다.
얼마를 벌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집안일을 얼마나 했는지.
하루가 끝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장부를 펼친다.
빈칸이 많으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도
그런 장부부터 펼칠까.
오늘 별일 없이 지냈다는 친구에게
“그럼 넌 오늘 가치가 없었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을
조금 나누어줄 수는 없을까.

동네 한 바퀴를 걸어도
꼭 운동량을 채울 필요는 없다.
서점에 들어가 책을 들춰보다가
한 권도 사지 않고 나와도 된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다른 일을 멈추고
끝까지 들어보아도 된다.
잠깐 아무것도 해내지 않는 동안
문득 들리는 것이 있다.
바람 소리,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오랜만에 길어지는 내 숨.
그런 순간까지 성과로 바꿔 적지는 말자.
편안했다면,
조금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두자.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정말 오래 남는 장면 중에는
별일 없던 오후도 있다.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있던 시간.
창밖을 보며 천천히 마시던 차 한 잔.
오늘 하루를 증명하려고
저녁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
어깨를 조금 내려보자.
수고한 나에게 내어주는 의자 하나.
그 자리에 잠시 앉아 있어도 괜찮다.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