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는 괜찮다면서, 나에게는 왜 그랬을까
아이가 처음 연필을 잡았을 때
우리는 글씨가 삐뚤다고
공책을 덮게 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 세 글자를 쓰는 데
한참이 걸려도 기다렸다.
“잘했네. 다시 한번 써볼까?”
틀린 글씨 옆에
동그라미를 그려주던 손이 있었다.
그 아이가 다시 연필을 잡은 것은
자신이 잘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처음 배우는 사람이 되면
이상하게 마음이 달라진다.
설명을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고,
같은 것을 다시 물어보려다가
상대가 귀찮아할까 봐
고개부터 끄덕인다.
집에 돌아와 혼자 해보면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너무 빨리
나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역시 나는 이런 거 못 해.”
“이 나이에 뭘 배우겠어.”
아이가 그렇게 말했더라면
우리는 뭐라고 했을까.
아마 공책을 다시 펼쳐주고
옆에 앉았을 것이다.
“처음이니까 그렇지.
모르면 다시 물어보면 돼.”
남에게는 그렇게 쉽게 주던 시간을
나에게는 한 번도
넉넉히 준 적이 없었다.
몇십 년 해온 일은 익숙하고,
어제 처음 본 것은 낯설다.
그 당연한 차이를 두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정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배우는 자리에서 잠시 서툴러진다고
살아온 세월까지 서툴러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누군가를 돌보고,
수없이 낯선 날을 지나온 사람이다.
이번에도 모르는 것이 생겼을 뿐이다.
오늘 새로운 것을 만나거든
이해한 척하지 말고
한 번만 말해보면 좋겠다.
“그 부분, 다시 알려주시겠어요?”
그 말은 포기의 반대편에 있다.
계속 배워보겠다는 뜻이니까.
작은 공책을 펴고
오늘 알게 된 것 하나를 적어보자.
글씨가 조금 삐뚤어도,
남보다 몇 줄 적더라도 괜찮다.
어제는 모르던 것을
오늘은 하나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날도 있다.
자꾸만 자신을 다그치고 싶어질 때
연필을 처음 쥐던 아이를 떠올려보자.
그 아이에게 건넸던 다정한 목소리로
오늘의 나에게도 말해주자.
“처음인데, 이만하면 잘했어.
우리 내일 또 해보자.”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