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못 입은 옷, 아끼다 못 산 인생
옷장을 정리하다 보면
유난히 새것 같은 옷이 한 벌 나온다.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몇 번 입지도 못한 옷이다.
“좋은 데 갈 때 입어야지.”
그러고는 비닐을 씌워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장을 보러 갈 때는 아깝고,
친구를 만날 때는 너무 차려입은 것 같고,
혼자 나갈 때는 굳이 싶었다.
그렇게 좋은 날을 기다리다가
옷의 유행이 지나고,
내 몸도 조금 달라졌다.
옷만 그런 것은 아니다.
손님이 오면 꺼내려고 둔 찻잔.
시간이 나면 가려고 적어둔 여행지.
형편이 나아지면 배우려고
서랍에 넣어둔 안내장.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잘 아껴두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아껴두는 동안
그것을 누릴 내 시간도
함께 지나간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다.
부모님 댁 찬장에 있던
꽃무늬 접시가 생각난다.
손님상에는 올라왔지만
정작 부모님이 매일 드시던 밥상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그릇.
그 접시를 꺼낼 만큼 귀한 사람에
왜 부모님 자신은 들어 있지 않았을까.
그러다 내 찬장을 보면
나도 꼭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남에게 내어줄 좋은 것은 챙겨두고,
내 것은 아직 쓸 만하다며
이 빠진 그릇을 다시 꺼낸다.
절약하며 버틴 날들이 있었기에
지킬 수 있었던 생활이 있다.
그 시간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제는
아끼는 방법이 조금 달라져도 좋겠다.
좋은 물건을 오래 보관하는 것만큼,
그것을 쓰며 기뻐할 나를
아껴주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 차 한 잔은
그 꽃무늬 찻잔에 마셔보자.
입고 싶었던 옷을 꺼내
가까운 공원이라도 걸어보자.
누가 오지 않아도,
대단한 약속이 없어도 괜찮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도
좋은 것을 꺼낼 만한 날이다.
가보고 싶던 곳에 가고,
배우고 싶던 것을 알아보는 일도
그렇게 시작하면 좋겠다.
삶을 다 정리한 뒤에야
내 차례가 오는 것은 아니니까.
옷장 문을 닫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이 옷을 입을 좋은 날에,
오늘은 왜 없었을까.”
오늘의 나에게
아껴둔 것 하나쯤 내어주자.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