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아무거나’가 좋았을까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참 익숙한 대화다.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은 잘 안다.
큰아이가 싫어하는 반찬도 알고,
배우자가 좋아하는 식당도 안다.
그런데 혼자 밥을 먹으려고 하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남은 반찬을 꺼내고,
찬밥을 데운다.
한 끼 때우면 됐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서는
그렇게 정성껏 차렸던 밥상인데,
내가 혼자 앉는 자리에는
자꾸 정성이 빠진다.
어쩌면 밥상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배워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해보고 싶은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애들 조금만 크면.”
“형편이 조금만 나아지면.”
“이 일만 끝나면.”
그 말 뒤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놓아두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새 몇십 년이 흘렀다.
이제 조금은 내 시간을 써도 되는데,
막상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이 왔는데
정작 그 시간을 기다리던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또 말한다.
“이 나이에 뭘.”
“그냥 이대로 살면 되지.”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걸까.
너무 오래 미뤄두어서
내 마음이 하는 말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표정 변화도 알아챈다.
밥숟가락을 내려놓으면
어디 아프냐고 묻고,
목소리가 가라앉으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이
오랫동안 조용할 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나에게도 물어야 한다.
“너는 뭐가 좋으니?”
금방 대답하지 못해도 괜찮다.
오랫동안 묻지 않았던 질문이니
답을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서점에서 유난히 오래
손이 머무는 책이 있을 수 있다.
산책하다 들려오는 악기 소리에
걸음이 느려질 수도 있다.
누군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그 마음이 들거든
이번에는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할 수 있을지부터 따지느라,
남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하느라,
또 뒤로 미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 가족의 작은 바람까지
기억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이제는 내 작은 바람 하나쯤
기억해주어도 된다.
오늘 저녁,
무엇을 먹고 싶은지부터
천천히 생각해보자.
남은 것을 꺼내기 전에,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고르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위해 한 상 차려보자.
그 밥상 앞에 앉아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너도 정성껏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야.”
그동안 참 애썼다.
이제 당신 몫의 자리도
비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희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