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간다는 것.

이 과정은 '느려진다'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걷는 속도, 먹는 속도,

먹은 걸 소화하는 속도,

상처가 치유되는 속도,

피로가 회복되는 속도들.

대체로 '나이 듦'은 '느려진다'에 비례한다.

이러한 '느려짐' 때문에 노화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는 10대, 20대, 30대, 40대를 지나

50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의 신체 변화를 보면

'느려짐'을 실감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이 시기가

젊은 시절보다 평온하고 행복하다.

왜 그럴까?

느려짐은 나에게 젊어서는

보지 못한 것들, 느끼지 못한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걸음걸이가 늦어지면서 내 주변을

좀 더 천천히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집 앞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그동안 바삐 사느라 보지 못한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 모든 것은 내 느려짐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오십 중반이 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젊어서는 젊어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었고,

나이가 듦에 따라서 젊어서는 몰랐던

새로운 즐길 거리와 누릴 것들이

생겨나는 것이 좋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머니와 대화를 한다.

대화의 내용은 대체로 산책길에 만난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둘레길 초입에 목련 나무 있잖니?

벌써 꽃봉오리가 크게 생겨났어."

"벌써요?"

"응. 조금만 더 있으면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꽃이 필 것 같아."

"내일 출근할 때, 저도 가서 봐야겠어요"

"목련나무의 예쁜 꽃을

조금 있으면 볼 수 있겠다."

어머니의 걸음 속도는

나보다 두 배 이상 느리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보다 두 배 이상 더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한다.

느리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어머니만의 세상이 있다.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는 화단에 가봤니?"

"아뇨. 요즘엔 못 가봤어요. 왜요?"

"글쎄, 어제 보니까

개미들이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어"

"개미요? 개미 본지가 오래되었네요"

"자그마한 개미들이 살겠다고

먹을 것을 옮기는 것을 보면, 참 대견해"

어머니는 집 앞을 산책하실 때,

휴대용 의자를 가지고 다니신다.

오랫동안 걷거나 서있으면

힘들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천천히 걷기도 하고,

걷다가 힘들면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휴대용 의자에 앉는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어머니는

주변의 작은 세상들을 들여다본다.

따뜻한 봄날이면, 어머니는

자연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자신만의 세상을 음미한다.

천천히 움직이고, 멈추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오늘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는데,

벌써 봄나물들이 올라오고 있어"

"벌써 봄나물이 올라와요?"

"다음 주에 가면 쑥 나물을 캐오려고 해."

"그럼 다음 주에는

쑥 나물 먹을 수 있겠네요"

"그래. 내가 맛있게 무쳐줄게"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모습이 마치

천진난만한 소녀를 보는 것 같았다.

다음 주에 나물을 캘 즐거움과

나에게 반찬을 만들어 줄 것을 생각하면

즐거우신 것 같다.

어머니는 봄이 오면,

송추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매주 간다.

그곳에 가면, 하루 종일 할 일이 많다.

잡초도 뽑고, 산소 앞에 있는

개나리를 예쁘게 가지치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하루 종일

흙과 나무와 바람 속에 자신을 맡긴다.

그럼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얘야. 나이가 든다는 게, 난 참 좋다"

"왜요?"

"젊어서는 사는 게 바빠서

정신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

"뭐가 너무 좋아요?"

"나물도 캐고, 개미도 보고,

꽃봉오리도 보고, 하늘도 보고....

예전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와.

참 좋다~"

어머니는 얼굴에 한껏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아마 젊은 사람들은

이런 행복을 모를걸~~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