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크레파스가 없어 고추장으로...
1974년 12월 24일.
국민학교 1학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방구석에서
비밀스러운 일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멋진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카드 그림의 주인공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였다.
연필로 밑그림을 신중하게 그렸다.
색칠을 하려고 가방에서 크레파스를 꺼냈다.
12가지 색의 크레파스다.
그중 5가지 색은 없다.
남아있는 7가지 크레파스도
손가락 한마디 정도다.
7가지 색으로 대충 색을 입혔다.
문제가 생겼다..!
산타 할아버지 옷과
털 모자를 칠할 색이 없다.
빨간색이 필요했다.
남아있는 색중에 빨간색 크레용이 없었다.
"어떡하지?"
색칠을 하지 못하고 난감해하고 있었다.
울음이 날 것 같았다.
이런 나를 본 엄마가 말했다
"의상아! 왜 그러니? 왜 시무룩해 있니?"
"산타 할아버지 옷을 칠을 해야 하는데,
빨간색이 없어"
엄마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엄마가 빨간색 만들어 줄게. 잠깐 기다려봐"
엄마는 부엌에서 고추장을 조금 떠왔다.
그리고 고추장을 물에 풀었다.
그 과정이 마술 같았다.
빨간색이 만들어졌다.
"이걸로 산타 할아버지
옷이랑 모자를 칠해보렴"
"와우~~ 빨간색 물감이네"
엄마가 만들어주신
고추장을 푼 물에 붓을 담갔다.
산타 할아버지의 옷과 모자를 칠했다.
제법 그럴싸하게 칠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가 퇴근하셨다.
아버지의 손에 센베이 과자봉지가 있었다.
"와~~ 과자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나도 선물을 드렸다.
엄마, 아빠에게 낮에 그린
크리스마스카드를 쑥스럽게 드렸다.
카드를 받으신 아빠가 환하게 웃으셨다.
"이거 네가 그린 거니? 정말 멋지다. 고마워~"
단칸방 작은 창문 밖으로 가로등이 보였다.
함박눈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와~~ 엄마, 아빠 밖에 눈이 내려요 ~"
너무나 설레고 행복해서 가슴이 뛰었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둘러앉아
평소보다 많은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나 분명히 기억하는 건
환한 미소들이었다.
4인 가족이 3평 정도의 단칸방에서 살았다.
가난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 시절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을 생각만 해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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