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불쌍하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얼마 전, TV를 보고 놀랬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하루에

다니는 학원이 모두 5개였다.

영어 학원, 논술 학원,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수학 학원.

마지막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저녁 11시가 넘었다.

자기 몸보다 큰 책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숨이 턱 막혔다.

이것이 요즘 아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과거에 비해

모든 게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우울증과

불안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상황이 생긴 걸까?

그것은 '놀이의 상실' 때문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에 학원은 없다.

오로지 친구들과의

즐거운 놀이의 추억으로 꽉 차 있다.

학교 다녀오면

책가방을 집에 던져 놓고 놀러 나갔다.

삼삼오오 친구들이 동네 공터에 모였다.

친구 중에 나오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집을 찾아다니며 대문 밖에서 크게 소리쳤다.

"길동아! 놀자~~"

"철수야! 놀자~~"

그렇게 동네를 돌면서 친구들을 모았다.

친구들이 다 모이면,

다양한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 일곱 발 뛰기,

철봉 놀이, 구슬치기, 다방구, 축구 등등.

친구들과 하루 종일

하하하 호호호 웃으면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이것이 내가 어렸을 적,

보냈던 행복한 하루의 기억이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

우울할 틈이 없었다.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고,

설렘만이 있었다.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고 말했다.

호모 루덴스란 '놀이하는 인간'이다.

놀이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재미'이다.

놀이는 인간의 가장 말초적이고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한다.

그래서 놀이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그런데 그 본능과 자연스러운 행위를

꼭꼭 억누르고 살면 어떻게 될까?

다양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것은 아이나 성인이나 마찬가지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놀이의 상실이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방학 하루 전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방학이다.

건강하게 재미있게 보내고,

방학숙제 잘해와라."

방학식을 마치고 학교 정문으로 나올 때,

우리는 가방을 하늘 높이 던졌다.

그때의 희열과 흥분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왜 희열과 흥분을 느꼈을까?

그것은 이제부터는 더 마음껏

놀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행복한 삶'이다.

행복한 삶에는 아이나 성인이나

'놀이'가 필수이다.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성공만을 쫓다 보니,

놀이를 잊고 산지 오래다.

그래서 은퇴 후에 자신의 시간이 생겨도

어떻게 재미있게 보내야 할지를 모른다.

은퇴 한 남자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오늘은 뭐하고 하루 종일 보내지?"

외로움과 고독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다.

은퇴 남성들의 자살률이

OECD 국가 1위라고 한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는 것일까?

바로 고독과 외로움이 그 이유이다.

그들에게 놀이가 있었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이 올해 62살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3년 전에 은퇴했다.

충분한 재산이 있어서

노후에 돈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은퇴 후에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한다.

평생을 직장 생활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은퇴 후,

그는 그냥 동네 아저씨가 되었다.

아무런 존재감 없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라틴댄스를 배웠다고 한다.

작년에 그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작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 보여요."

"그래 보이죠."

"네. 혹시 성형수술하셨어요?"

"하하. 아니오."

"그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라틴댄스를 배우면서 은퇴 후의 삶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었어요.

너무나 행복해요."

그는 은퇴 후, 지옥에서 살았었다.

그런데 춤이라는 놀이를 만나면서,

지금은 천국에서 살고 있다.

놀이는 개인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놀이는 단순히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놀이를 통해

타인과의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만날 수 있다.

내 나이 오십 중반이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다양한 놀이들을

내 삶으로 하나씩 소환해 와야겠다.

죽는 그날까지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어렸을 적,

하루 종일 놀이와 함께 보냈던 그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