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임종 2주 전에 남긴 다섯 글자
"어~ 아버지! 괜찮으세요?"
아버지는 갑자기 중심을 잃고 쓰러지셨다.
잠시 후에 괜찮다고 하시면서 일어나셨다.
15년 전 11월 겨울의 일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상갓집에 다녀오는 길에 생긴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물론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다.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잠시 어지러울 뿐이라고
괜찮다고 하셨다.
평소에 병원 한번 안 가시고 건강하셔서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났다
"징~~ 징~~ 징~~~"
진동으로 해둔 핸드폰이
바지 속에서 울렸다.
어머니한테 온 전화였다.
"네! 엄마"
전화기 건너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엄마~ 말씀하세요"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지금 병원에 와있다"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요?"
"여기 병원이야. 올 수 있으면 와다오"
"네 알았어요. 빨리 갈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잠깐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엄마는 웬만한 일에는
내가 걱정할까봐 전화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전화를 했다면, 아버지의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반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병원으로 급하게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응급실에 누워계셨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머리로 가는 혈관이 막혔다고 했다.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다.
며칠 간의 정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더욱 충격적인 결과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혈액 암이 꽤 진행된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자께서는 6개월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15년 전 당시 나는 빚에 쫓기며
매우 힘든 날을 보내고 있을 때다.
나에게 돈이 없었다. 빚만 있었다.
당장 아버지 병원비가 걱정이었다.
당시에 형님도 형편이 매우 안 좋았다.
두 아들이 있었지만
각자 자기 살아내기도 버거웠던 시기였다.
아버지의 정신은 신기하게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셨다.
하루에 몇 분 잠깐 제정신이
조금 돌아올 때가 있으셨다.
그럼 그때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사소통의 글이었다.
아버지는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지만
정신이 들어오셨을 때 최소한의 글은 쓸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 2시경에 잠에서 깨셨다.
정신이 조금 들어오신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무언가 할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았다.
"아버지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버지는 눈을 깜빡이셨다
"수첩 드릴까요?"
눈을 깜빡이셨다.
병원 침대를 앉은 자세가
가능하도록 세웠다.
아버지 손에 볼펜을 잡아 드렸다.
글씨를 쓰실 수 있도록 수첩을 펼쳤다.
아버지는 힘겹게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솜털보다 여린 힘으로 쓰셨다.
그렇게 5분여 동안 쓰신 글자는
딱 다섯 글자였다.
알아보기 힘든 글씨였지만,
난 알아볼 수 있었다.
"보.증.금. 엄. 마."
아버지가 쓰신 마지막 다섯 글자였다
이 뜻이 어떤 뜻인지 잘 알고 있다.
"보증금"
아버지는 병원에 오시기 3개월 전에
집 전세 계약을 하셨다.
집주인의 딸이 와서 대리로 계약했다.
당시에 딸은 대리인으로
인감도 없이 전세 계약서를 썼다.
아버지는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셨다.
'엄마'
이 단어 뒤에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셨지만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어 하는지를..
"엄마를 잘 부탁한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려라"
다섯 글자를 쓰신 후에 잠깐씩이라도
돌아오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2주 후, 아버지는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영면하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보.증.금. 엄.마.'
유언을 지켜드려야 했다.
보증금 문제는 집주인과 연락하여
어렵게 다시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언..
"엄마! 행복하게 해드려라"
당시 빚쟁이에 쫓기며
고시원 쪽방을 전전하고 있었다.
이 유언을 지켜드리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2021년 1월 1일 새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머니가 해주신 새해 떡국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어머니가 떡국을 드시다가 말씀하셨다.
"의상아~ 난 요즘 참 행복 하구나"
"네가 잘 돼서 좋고, 돈 걱정 안 해도 되고,
좋은 집에서 너랑 살아서 참 행복하다"
나는 떡국을 먹다가 가슴이 뭉클했다.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떡국을 다 먹은 후에 내방으로 왔다.
창문을 열었다.
새벽어둠을 밀어내고,
새해 첫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아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 엄마가 행복하다고 하셨어요.
이제야 아버지 유언을 지켰어요.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엄마 더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모실게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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