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내 나이 28살이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첫 직장'에 들어갔다.

한 달 뒤, 꿈에 그리던 '첫 월급'을 받았다.

월급으로 부모님께 '첫 내복'을 선물했다.

6개월 뒤, '첫 독립'을 했다.

10개월 뒤, '첫 선'을 보았다.

그리고 1년 뒤, 1995년 '첫 차'를 구입했다.

1994년부터 1년은

수많은 설레는 '첫 경험'을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설레고, 흥미롭고, 기쁘고, 가슴이 뛴다.

그중에서도 나의

'첫 차'의 추억은 특히 더 각별하다.

나는 차를 정말 좋아했었다.

십 대 시절부터 지나가는 차를 보면서

항상 꿈꿨었다.

"내 차를 가질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그런데 그 꿈만 같은 일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취업 후 1년 만에 첫 차를 샀다.

기아에서 나온 '아벨라'라는 소형 차였다.

월급이 많지 않은 신입사원이라서

48개월 장기 할부로 구입했다.

차를 인도받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심장이 마구 뛴다.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전에 1시간 가량 차를 정성껏 닦았다.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정도로

반질반질하게 광을 냈다.

출근 전, 차를 닦고

광을 내는 한 시간은 노동이 아니라

행복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였다.

기숙사 뒷길로는 언덕이 있었는데,

차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차를 몰고 1km 정도 올라가면

산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산 정상은 독특한 지형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해발 800미터 정도의 고지대로

나무는 거의 없었고,

드넓은 초원을 이루고 있었다.

초원 끝으로는 지평선을 볼 수 있었다.

지평선 왼쪽으로는 동해안 바다가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산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그곳에서 차를 세웠다.

깜깜한 밤,

작은 불빛조차 없는 그곳,

차 안에서 창밖의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면서 밤을 새웠다.

내 차의 냄새, 시트의 감촉,

차에서 나오는 음악을

오감으로 만끽했었다.

그곳은 이 세상에 오직 나와 그리고

내 차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주말이면 그곳으로

차를 몰고 가서 1박 2일 동안

차 안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토요일 그곳에서 거의 1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내 삶을 살펴보면,

그토록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이

내 주변에 널려 있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더 좋은 옷..

수없이 많은 더 좋은 것들로 가득한데,

예전의 그 설렘은 거의 없다.

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은 소중한 것들이

이제는 의미와 존재감이 점점 사라져갔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에 가졌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설레었던가?

요즘 나는 잊고 지냈던

'첫 경험'의 설렘을 하나씩

내 삶으로 가져오는 중이다.

지금 내가 당연하게 생각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내가 익숙하게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의미로 하나씩

나의 첫 마음으로 다시 소환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여행에 대해

자신에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자극적인 것들을 욕망하지 말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만

그 소중함을 놓치고 살았던

첫 마음의 순수함을 다시 찾고 싶다.

나의 소중한 첫 경험들

첫 자동차, 첫사랑, 첫 월급,

첫 직장, 첫 집, 첫 선물, 첫 독립...

바삐 사느라 잊고 지냈던

'첫 마음'들을 하나씩 내 마음속으로

다시 가져오려 한다.